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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한라산에 마음 주고 쪽빛 바다에 정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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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Jejueco 날짜16-06-23 22:37 조회1,17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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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6.09.19 553 호 (p 62 ~ 64)


[사람과 삶|지독한 제주 사랑 제주에코여행사 대표 빅토르]


한라산에 마음 주고 쪽빛 바다에 정붙이고

이미숙 주간동아 아트디렉터 leemee@donga.com

파랗고, 파랗고, 파랗다. 시베리아의 삭풍(朔風)을 젖히고 한반도 끝자락, 서귀포에 내려선 러시아 남자 빅토르 라셴세브(Victor Ryashentsev)의 눈동자에 담긴 바다 빛이 그렇고, 하늘이 그렇다. 그리고 뜨겁다. 작열하는 이 여름의 마지막 해와 마주 선 눈동자는 청천백일(靑天白日) 그가 걸어온 길, 앞으로도 걸어갈 길처럼 푸르고 뜨거웠다.

“제주를 처음 찾았던 게 1994년이었어요. 그해 봄 경기대 수원캠퍼스로 4개월 언어연수를 왔다가 3박4일 수학여행을 온 데가 제주도어우다(예요). 여행 후 요새 젊은 사람들이 잘 쓰는 한국말로 제주에 ‘뻑’ 갔쑤다. 이럴 때 ‘필이 꽂혔다’는 ‘당근’ 약한 표현 아니겠수꽈.”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봐도 이런 데는 없었다고 했다. 90학번인 빅토르는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 경제를 부전공했다. 그래서인지 한국말에 막힘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천연덕스레 시쳇말도 잘 던지는 이 남자. 마르고 한참 길어, 어쩐지 ‘뻘쭘’해 뵈는 남자. 제 나라 사람도 해석하기 힘든 제주 방언을 어미에 달며 빙빙 입꼬리에 감기는 사람 좋은 웃음에 야자나무 가웃 자란 키까지도 정겨워지는 것이다.

73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이제 서른넷.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고 자란 빅토르에게 제주는 낯선 이역이 아니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젖가슴 같은 땅, 쪽빛 바다를 보노라면 가슴이 터져버릴 듯한 땅이었다. 그 섬을 안고 다시 러시아로 향했지만 마음은 이미 못 이룬 첫사랑에 긴 밤 하얗게 새는 연정인 듯 먹먹했다. 대학을 마치고 모교에서 강의를 맡았다. 대학원 졸업논문으로 한국 벤처기업에 관한 주제를 잡았던 이유는 러시아의 불황 해법을 한국 경제에서 찾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바쁜 2년이 지나도록 제주는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움은 더 깊어졌다.

“결국 1997년 다시 한국에 왔어요. 연세대 어학당 교환강사로 와서 러시아어를 가르쳤지요. 러시아에선 한국어 전공자가 많지 않아서 학문이든 경제 쪽이든 맘만 먹으면 제대로 할 수 있었는데, 도저히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어요. 그래서 3년 만에 ‘귀환’했지요. 2001년 제주로 정착하자고 작정했을 때 모교에서 연구원 제의가 있었거든요. 갈등을 좀 했지요.”

그리움 끝에 달게 온 길이었다. 유혹 외의 욕망은 검부러기가 되어 날아갔다. 대학 3학년 때 캠퍼스커플로 만나 2년 연애하다가 1994년 결혼한 아내 나타샤(32·Natasha Nazarenko)는 고국에 남겨두고 혼자 꾸려야 하는 서울 살림이지만 외롭지 않았다. 혼자서, 때론 벗들과 시간 날 때마다 제주를 들락거리는 재미는 쏠쏠했다. 스킨스쿠버 다이빙도 그때 배웠다.

수학여행 왔다가 매력에 ‘푹’ … 귀국 후에도 못 잊고 ‘귀환’


옛말이 맞는 법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 그가 오고 1년 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나타샤의 한국 사랑도 만만치 않다. 외동딸을 떼어놓기 애달파하는 부모의 만류도 마다한 채 신랑을 쫓아 물 설고 말 선 이 나라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눈먼 신랑이 이끄는 대로 제주를 찾았다가 쪽빛 바다의 매력에 대책 없이 빠져버린 나타샤는 서울을 새장(golden cage)이라고 했다. 바다가 없는 도시는 숨이 막혔다. 제주행을 서두른 건 오히려 그녀가 먼저였다.

정신보다 물질이 우선하는 세상, 고부가의 레디메이드에 열광하는 세태를 등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고향에서도 인정하는 사회적 지위나 고액의 급여를 벗어던진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가 말이다. ‘께벗고’ 사위를 더듬어도 인연 닿을 끈 한 자락 없는 맨 땅에서 그들을 버티게 한 건 오로지 거기에 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섬의 숨은 속살까지 다 안고 만지고 싶었다.

허나 금강산 구경도 배불러야 하고, 도중 군자(道中君子) 노릇도 배가 불러야 한다고 했다. 홀몸도 아닌 터, 이토록 풍광 좋은 땅에서 ‘밥’은 선결과제였다. 대학 시절 러시아에서 아르바이트 해본 관광가이드라면 제주 사랑과 밥이 동시에 해결될 성싶었다. 부부는 제주의 산과 오름(풍화된 기생화산), 인적 드문 해안가까지 샅샅이 훑으며 여행 아이템을 잡았다. 제주 하면 오름을 먼저 봐야 한다는 빅토르는 368개의 오름들 가운데 이미 200여 개의 오름을 올랐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지만 화가로 정물이나 풍경을 즐겨 그리는 나타샤에게 제주는 정화(淨化)의 섬이자, 더없는 ‘영감의 섬’이기도 했다.

“가이드를 하는 동안 눈으로 본 제주를 마음으로 보게 됐습니다. 곧바로 제주를 소개하는 홈피를 만들었는데 굉장한 인기였어요. 힘을 얻어 러시아에 있는 친구, 친지들에게 우리가 개발한 여행코스를 소개했지요. 반응이 좋았어요.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8월 회사(제주에코여행사·www.jejueco.com)를 차렸지요. 저희 사이트에 한번 와보세요. 여행하신 분들이 올려놓은 후기를 보시면 제가 자랑 안 하는 이유를 알 겁니다.”


그의 여행사는 이름대로 생태여행을 테마로 잡고 있다. 갯깍주상절리대, 쇠소깍 같은 숨은 비경과 소정방 물맞이, 문섬(島)과 오름 트레킹, 트레킹 사이사이 해안에서 즐기는 스노클링…. 철마다, 날씨마다 달라지는 제주에코의 여행 프로그램은 볼거리 위주에다 쇼핑은 ‘불가항력 옵션’인 여타 관광사의 상품과는 그래서 차별화된다. 그의 소개로 얼마 전 국영러시아방송에서 방영한 제주의 풍광과 문화도 제주에코에 쏟아온 저간의 결실이었다. 그가 개발한 생태여행상품은 2년 연속 문화관광부 인증 인바운드 우수여행상품으로 선정되었다.

회사를 차린 첫해엔 외국인들로만 여행 팀을 구성했다가 이즘 들어서 내·외국인이 함께 체험하는 관광으로 바꾸었다. 빅토르가 한 번에 안내하는 여행객의 규모는 2~10여 명 내외. 그의 12인승 밴이 허락하는 인원이면 다소를 가리지 않는다. 특히 내국인들에게 빅토르의 가이드는 인상적이다. 그가 구사하는 제주방언만치 내국인을 ‘좌절’하게 하는 박학다식 ‘제주통’의 설명이 그렇고, 턱없이 저렴한 가이드비가 그렇다. 진정한 제주의 숨은 맛을 선보이는 점심까지 쳐서 하루 5만5000원이면 너끈하다. 그 돈이면 택시를 한 대 대절한다거나 렌터카를 써서 여행해도 턱없이 부족할 비용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벌어 생활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외국 관광객에게는 제 값을 받는단다.

제주 구석구석 속속들이… 전 세계에 제주 알림이 역할


빅토르가 추천하는 맛집이란 파는 집이건 가이드건 장사 잇속 한 틈도 없을, 중저가의 식대로 배부를 집들이다. 예컨대 서귀포시 남원읍 공천포식당 같은 곳 말이다. 대충 놓인 테이블에 자리돔 물회가 ‘스텐’ 그릇에 담겨 나오는 집이다. 비위 약한 사람을 위해 한치 물회도 해준다. 취재 간 일행이 식대를 내겠노라 해도 굳이 파란 눈 아저씨가 사는 점심이 달았겠는가. 미안하게도 정말이지 달았다. 자리돔 물회를 처음 먹어본다는 말을 빅토르는 거짓부렁으로 알았을 게다. 혼자 2인분을 비웠다.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 그들을 이끄는 제주를 사랑한다는 벽안의 남자, 그 사랑들 뒤로 빅토르는 또 하나의 사랑을 품었다. 딸 마샤를 낳은 일이다. 마샤는 지금 네 살, 아빠의 파란 눈을 꼭 닮은 예쁜 제주토박이다. 결혼하고 8년 만에 딸을 얻었으니 “깨물고 싶도록 예쁘다”며 깨춤을 춰도 모자랄 판이다.

“제주 삼신할머니가 ‘어이구 빅토르, 장하다’ 하고 점지해줬다고 생각해요. 지금 어린이집에 가 있어서 못 보여드리겠네요. 우리 마샤 한국말 잘하고 아이들과도 잘 놀아요. 좀 있으면 저보다 제주도 사투리도 더 잘할 거예요. 어린이집 보내고 초기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어른보다 적응이 빠른 게 초압축 스펀지 같아요. 와이프와 함께 아이 키우랴 일하랴 요즘처럼 바쁘기도 오래간만입니다. 정신이 없어도 마샤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국적 문제 정리도 그렇고….”


사랑하는 아내, 딸 마샤와 함께.
몇 년 제주에 뿌린 공력으로 국내외에 제주 알림꾼으로 소문나 ‘제주홍보대사’라는 별칭까지 덤으로 갖고 있는 빅토르가 한국에서 가장 힘든 점으로 꼽는 건 체류 연장 갱신이다. 제주와 관련해 정부로부터 상을 받았다거나 제아무리 국익에 도움이 됐다 해도 이방인은 이방인일 따름이었다. 루게릭병으로 작고한 사진작가 김영갑 씨가 제주를 미치게 사랑해 렌즈에 담으며 죽는 순간까지 머물렀던 20년간, 자신은 그들(제주인)에게 언제나 ‘뭍엣것’일 뿐이었다고 했던 곳. 빅토르는 체류 연장 신청을 하는 6개월마다 김영갑 씨의 그 말을 실감한다.

김영갑 씨가 담은 사진 속 제주는 늘 흐르는 것이었다. 구름이, 바람이, 수풀마저 종내 흐르고야 마는 섬…. 10년 전 어느 봄날 제주 아끈다랑쉬 오름을 또 오르는 무지개를 찍어놓고 ‘삽시간의 황홀’을 맛봤다던 김영갑의 사진을 빅토르는 또 미치게 사랑한다. 스킨스쿠버 외에 사진 솜씨가 프로에 가까운 그가 서귀포를 들렀다면 김영갑 갤러리는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행은 어디를 가고 보느냐보다 어떻게 즐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빅토르 라셴세브. 제주를 가려는 자, 그 ‘어떻게’를 배우기 위해 이미 알고 있던 제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지울 일이다.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마법을 걸었던 신화 속 키르케가 다시 그에게 마법을 걸었던가. 그렇다. 제주는 키르케였다. 제주시에서 마라도까지, 애월에서 비양도까지 매 순간 가는 데마다 한 번도 같은 날씨를 보여주지 않는 땅. 바람 부는가 싶었는데 햇살이 내밀고 손바닥만큼 파란 하늘이 보이는가 했는데 안개가 무릎을 적시는, ‘삽시간의 황홀’이 도처에 흐르는 섬. 빅토르의 눈동자 속 제주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속앗수다예(수고했습니다), 다음에 또보게 마씸!”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6/09/13/200609130500065/200609130500065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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