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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2004년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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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Jejueco 날짜16-06-23 22:30 조회1,284 댓글0본문
ACTIVE ISLAND, JEJU
오감을 자극하는 생태 체험
Monthly DOVE Korea: 2004년7월호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곳이기에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제주도의 풀, 꽃, 나무, 바위, 모래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작은 생명체들의 숨결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도 아까운 제주도의 숨겨진 매력, 트레킹 전문 가이드 빅토르를 따라 바다에서 오름을 지나 한라산까지 짜릿한 오감 여행을 떠난다. 에디터 성열규 | 사진 김종현
제주도를 말할 때 항상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남국의 쪽빛 바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풍만한 곡선을 연상시키는 오름, 용암의 엄청난 파괴력이 만들어낸 제주도 생명의 근원, 한라산. 한없이 고요하고 아늑하여 편안한 안식을 주는 제주도의 풍경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숲을 볼 것인가, 나무를 볼 것인가. 제주도 트레킹 전문 가이드 빅토르는 숲을 바라보게 했던 종전의 여행들과는 전혀 다른, 나무를 바라보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작은 것들을 통해 발견하는 제주도의 진정한 매력, 생생한 액티비티를 통해 감춰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빅토르와 함께 제주도의 숨겨진 속살을 살며시 들추어보았다.
새파란 물빛의 감미로운 유혹
3일간의 제주도 트레킹 일정의 첫 코스는 섬 트레킹이다. 이번 일정에는 허니문을 위해 미국에서 여행을 온 칼 Carl과 앤 Anne이 동행했다. 우리나라에서조차 허니문 휴양지로 시들해진 제주도를 이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일까? 트레킹의 출발에 들떠 팔짝팔짝 뜀박질을 하던 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번 여행은 허니문이면서 동시에 한국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보름간 한국 전역을 돌아보았는데,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추천한 곳이 이곳 제주도였죠.” 우리나라 허니문이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조용한 공간에서 일주일 정도 머무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할 때, 이들의 제주도 트레킹 선택은 다소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아쉽다. 빅토르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준다.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의 여행 스타일을 좇아 해외여행을 가길 원합니다. 그러나 진정 그들의 스타일을 부러워한다면 그들이 어디를 가느냐가 아닌 어떻게 여행을 즐기느냐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빅토르가 말하는 ‘어떻게’를 배우기 위해 그동안 제주도에서 얻었던 모든 관광 정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그를 따라나섰다. 섬 트레킹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한 것은 배를 타고 바다를 도는 유람의 수준이리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빅토르가 처음 안내한 곳은 선착장이 아닌 서귀포 시내에 위치한 작은 다이버 숍이었다. 이곳에서 일행은 각자의 몸에 맞는 슈트와 오리발, 스노클링 등의 간단한 장비를 챙겨 서귀포항에서 멀지 않은 낚싯배 선착장으로 향했다.
강렬한 태양이 넘실대는 바다 표면 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작은 낚싯배는 파도를 오르내리며 거칠게 바다를 거슬러 나아간다. 피부에 닿는 따가운 햇살은 바다 너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쓸려가고, 새롭게 펼쳐질 세계를 향한 열띤 흥분을 간간이 넘어 들어오는 새하얀 물방울의 차가운 감촉으로 진정시킨다. 가깝게 다가오고 있는 문섬을 바라보며 멍하니 넋이 나가 있는데, 갑자기 옆을 스쳐가던 유람선이 만들어낸 거대한 너울이 배 앞으로 밀어닥치면서 순간적으로 배가 높이 솟구쳐 올랐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위험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어 칼과 앤을 돌아보니, 오히려 일어나서 환호성까지 내지르며 배의 흔들림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제각각 한여름의 바다 정취에 흠뻑 젖어 있는 동안에도 빅토르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제주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외국인에게 우리나라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기분은 참으로 묘하다. 영어와 한국어로 말하는 빅토르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치 익숙했던 제주의 풍경까지도 전혀 생소하게 느껴져, 인도네시아의 어느 군도를 따라 유람하는 기분이 든다.
약 30분가량 나아가던 배는 문섬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돌섬인 새끼섬에 배를 갖다 댔다. 가방을 챙겨 섬 위로 뛰어내리니 너른 바위 한구석에 쌓여 있는 수십 개의 산소통이 눈에 띈다. 바다 표면에는 벌써 장비를 착용한 열댓 명의 다이버들이 차례차례 입수를 하고 있었다. “문섬 바다 밑에는 난류가 흘러 1년 내내 화려한 무늬의 어류들이 서식하고 있지요. 또한 이곳 바다 밑에는 희귀 산호들이 자리하고 있어 다이버들을 매혹시킨답니다. 새끼섬에서는 특히 연산호가 장관을 이루지요. 세계 각지에서 많은 다이버들이 이곳을 찾는데, 이곳의 산호군이 최고라는 사실에 모두들 이견이 없지요.” 빅토르의 설명이 더 이상 귓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행은 재빨리 슈트를 갈아입고 가벼운 뜀박질로 준비운동을 한 후 바위 턱에 앉아 입수 준비를 하였다. 배 위에서 보던 물빛은 검푸른 색이었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표면에서 약 50센티미터까지 투명한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파랗고, 파랗고, 파랗다. 도저히 어떠한 단어로도 이 파란 빛깔을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바다 빛깔을 에메랄드빛이라고 표현하지만 도무지 이 파랑의 정체는 세상 어느 그림으로도, 어느 사진으로도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물에 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물 빛깔에 매혹되어 한동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제주도의 바다가 이토록 아름다웠다는 것을 어찌 이제야 발견했을까? 빅토르가 입수 신호를 주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 상태로 남아 바위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햐아아아….”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칼의 모습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뒤이어 모두가 동시에 물로 뛰어들었다. 짧은 순간 느꼈던 센티멘털한 감상은 입수하는 순간 완전히 날아가버렸다.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바닷속의 황홀경이 온갖 희로애락의 상념을 삼켜버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물이 맑다는 동해안과 산호초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사이판의 바닷속을 들어가보았지만 이곳의 투명함과 화려함, 그리고 그 속에 살아 있는 아기자기한 풍경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얗게 빛나는 산호초 궁전들, 그 사이를 오가는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의 애교 넘치는 몸짓,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속 생명체들의 수많은 잡음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환상을 잡아보기 위해 천천히 손을 내밀자 어디선가 나타난 자그마한 열대어 한 마리가 손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며 맴돈다. 찰나, 녀석은 손가락 사이에 생긴 기포를 터뜨린 후 쏜살같이 사라지고, 녀석이 남기고 간 미세한 간지러움은 온몸에 퍼져 있는 모든 감각의 문들을 활짝 열어젖힌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거대한 오대양의 바다가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들어 오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긴장했던 육체는 바다와 하나가 되어 부드럽게 녹아든다.
물 밑 세상에서 나와 새끼섬에서 배로 5분 거리에 있는 문섬의 절벽 위에 섰다. 수평선이 맞닿은 끝자락에서부터 서서히 황혼의 기운이 밀려들며 파랗던 바다는 황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한눈에 담아낼 수 없는 광활한 대한해협의 석양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수없이 제주도를 여행했으면서도 이제야 제주도의 매력을 아주 조금 엿보았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동양의 노을빛에 물들어 행복해하는 칼과 앤을 바라보며 나 역시도 이들과 같은 이방인이었음을 깨닫는다.
화산섬의 실체에 다가서다
빅토르가 소개하는 두 번째 일정은 해안가와 계곡 트레킹이다. 아침이라 아직은 한산한 공원 길을 따라 외돌개가 보이는 절벽으로 향한다. 외돌개는 뭍과 떨어져 바다 한가운데에 외롭게 서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외돌개는 일명 장군석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서귀포 앞바다 범섬에서 원나라의 잔류 세력을 토벌할 때, 외돌개를 장대한 장수로 변장시켜 범섬에 숨어 있던 적군이 이를 보고 겁에 질려 모두 자결하게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외돌개는 약 15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하였을 때 용암이 제주도의 모습을 변형시키면서 형성된 바위입니다. 꼭대기에 소나무가 보이시나요? 어떻게 저 척박한 바위 위에 소나무가 자랄 수 있는지, 볼 때마다 경이로울 뿐입니다.” 칼은 렌즈의 줌을 최대한 당겨 소나무를 크게 찍으려 했다. 그에게는 바위보다는 나무의 생명력이 신기한가 보다. 칼과 앤이 여느 신혼부부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지켜본 후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빅토르가 방향을 틀어 숲길로 향했다. “외돌개가 유명하지만 사실 이곳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바로 근처에 있지요. 주로 낚시꾼들이 찾는 곳이라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요.” 숲길을 지나 절벽 아래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바로 아래에 바위로 둘러싸인 천연 수영장이 나타난다. 그 너머에는 거대한 절벽이 펼쳐져 있는데, 특이한 것은 절벽에 두 개의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저기 천연 수영장은 앞이 트여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기 낚시꾼들이 앉아 있는 곳 보이시죠? 얼핏 보면 천연 바위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시멘트로 마무리한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군이 한국을 점령했을 때 이곳에 병영이 있었는데, 장교들을 위한 수영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시멘트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가 말하는 일본군 병영이 있었던 곳이란 바로 두 개의 구멍을 말하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니며 가끔씩 발견하게 되는 지난날의 뼈아픈 잔재가 여행의 감흥을 반감시킨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서귀포에서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나타나는 쇠소각(쇠소깍)이다. 외진 곳에 있는 탓에 우리에게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이곳의 숨겨진 비경은 사실 몇 차례 방송에서 소개된 바 있다. 쇠소각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펼쳐진 기암괴석이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굳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용두암 역시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것이지만, 쇠소각의 기암괴석들은 하얀빛을 띠고 있으며 훨씬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다. “쇠소란 이곳에 고여 있는 호수의 이름입니다. 비가 오면 이 계곡에 물이 차서 저 기암괴석들도 물에 잠기지만, 평소에는 바다와 바로 접해 있어 물이 금방 빠져나가기 때문에 쇠소를 제외한 나머지 길목은 이처럼 기암괴석들이 독특한 조각상 모습을 드러내지요.” 정말 쇠소각의 경치는 극과 극을 이룬다. 물이 고인 쇠소는 주변에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져 풍성한 호수의 모습이지만 바로 아래에 자리한 각양각색의 바위들은 마치 화성 표면을 보는 듯한 삭막한 풍경이다. 쇠소각을 따라 바다로 걸어 내려가니 검은 모래사장이 나타난다. 검은 모래 역시 화산의 영향으로 생성된 것인데, 한때는 검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학술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쇠소각이 제주도의 형성 과정을연구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아십니까?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아요. 여기 모습도 인근의 포구 공사로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입니다.”쇠소각을 빠져나와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칼이 뼈 있는 말을 던진다. “지금 까지 돌아본 제주도는 매우 독특한 특징과 색채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막상 섬 여기저기 개발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제주도만이 간직한 매력을 잘 살려내지 못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가 다음에 다시 방문할 때까지 제주도가 지금의 모습만이라도 간직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심 후에는 다시 서쪽으로 이동, 가파도와 마라도를 바라볼 수 있는 오름, 송악산으로 이동했다. “오름은 대부분 제주도 동부에 몰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오름은 거의 사유지라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지요. 더군다나 코스도 만만치 않아서 반나절로는 트레킹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송악산의 오름은 동부의 오름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어려운 코스가 아니다. 산 중턱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턱부터 정상까지는 20분 남짓 소요되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니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가파도가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을 등진 체, 단체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칼과 앤는 바다의 절경보다는 그 반대 경사면 아래로 펼쳐진 옛 화산 분화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금은 푸른 풀이 뒤덮고 있어 분화구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도, 이들은 수없이 탄성을 질러댔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보다도 더 빨리 제주도의 매력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푸른 섬의 마법에 걸린 이방인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마법을 걸어 섬에 묶어둔 마녀, 키르케는 대자연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대자연의 거대한 안식과 풍요로움이라는 마법을 물리치고 떠났지만, 한 사람은 남아 키르케의 나팔수가 되었다. 그가 바로 제주도 트레킹 전문 가이드, 빅토르다.
러시아 출신의 빅토르 랴옌체프 Victor Ryashentsev가 다른 여행 가이드들과 달리 유독 세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지 외국인이거나 재미있는 재담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웬만한 제주도 사람들 이상으로 제주도의 역사, 문화, 사회, 지질, 식생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주도를 지독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빅토르와 제주도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교환학생으로 경기대에 다니면서부터 시작된다. 학기가 끝날 무렵 우연히 제주도를 찾은 그는 러시아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제주도의 독특한 자연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러시아로 돌아간 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경제에 대해 공부를 마치고 1997년 연세대 어학당 강사로 다시 한국을 찾는다. 이 시기, 친구의 권유로 배우게 된 스킨스쿠버다이빙은 그가 제주도의 매력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이빙을 통해 제주도가 간직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조금씩 제주도의 모든 것에 관심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말, 모국의 대학에서 연구원 자리를 제의받은 빅토르는 인생에 있어 최대의 갈림길에 놓인다. 결국 그의 선택은 제주도였다.
연구원 자리를 포기하고 제주도로 완전히 이사를 온 빅토르는 본격적으로 제주도와 함께할 인생을 설계한다. 이 무렵 러시아에 남아있던 그의 부인 나타샤 나자렌코 Natasha Nazarenko도 러시아를 떠나 그의 곁으로 날아온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여행사 ‘제주에코(www.jejueco.com)’를 오픈한 2003년 말까지, 제주도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뒤적이며 공부하던 2년간은 이들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 이때 빅토르에게 신념을 밀고 나가게 해준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는데, 결혼 후 9년 동안 생기지 않았던 아이, 마리아 Maria가 태어난 것이다. 제주도가 선사해 준 이 사랑스러운 선물은 빅토르와 나타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 계기가 되었다. “아직은 출발 선상에 있지만, 저는 이곳에서 저와 제 가족의 미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도가 우리 가족에게 보여준 호의의 손길에 보답하는 방법은 제가 지금껏 보고, 듣고, 느끼며, 찾아낸 제주도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생태 체험
Monthly DOVE Korea: 2004년7월호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곳이기에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제주도의 풀, 꽃, 나무, 바위, 모래들.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작은 생명체들의 숨결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스쳐 지나가기엔 너무도 아까운 제주도의 숨겨진 매력, 트레킹 전문 가이드 빅토르를 따라 바다에서 오름을 지나 한라산까지 짜릿한 오감 여행을 떠난다. 에디터 성열규 | 사진 김종현
제주도를 말할 때 항상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남국의 쪽빛 바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풍만한 곡선을 연상시키는 오름, 용암의 엄청난 파괴력이 만들어낸 제주도 생명의 근원, 한라산. 한없이 고요하고 아늑하여 편안한 안식을 주는 제주도의 풍경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 숲을 볼 것인가, 나무를 볼 것인가. 제주도 트레킹 전문 가이드 빅토르는 숲을 바라보게 했던 종전의 여행들과는 전혀 다른, 나무를 바라보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작은 것들을 통해 발견하는 제주도의 진정한 매력, 생생한 액티비티를 통해 감춰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빅토르와 함께 제주도의 숨겨진 속살을 살며시 들추어보았다.
새파란 물빛의 감미로운 유혹
3일간의 제주도 트레킹 일정의 첫 코스는 섬 트레킹이다. 이번 일정에는 허니문을 위해 미국에서 여행을 온 칼 Carl과 앤 Anne이 동행했다. 우리나라에서조차 허니문 휴양지로 시들해진 제주도를 이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일까? 트레킹의 출발에 들떠 팔짝팔짝 뜀박질을 하던 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이번 여행은 허니문이면서 동시에 한국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어요. 보름간 한국 전역을 돌아보았는데,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추천한 곳이 이곳 제주도였죠.” 우리나라 허니문이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조용한 공간에서 일주일 정도 머무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할 때, 이들의 제주도 트레킹 선택은 다소 이색적이라 할 수 있다.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아쉽다. 빅토르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준다.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의 여행 스타일을 좇아 해외여행을 가길 원합니다. 그러나 진정 그들의 스타일을 부러워한다면 그들이 어디를 가느냐가 아닌 어떻게 여행을 즐기느냐를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빅토르가 말하는 ‘어떻게’를 배우기 위해 그동안 제주도에서 얻었던 모든 관광 정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그를 따라나섰다. 섬 트레킹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한 것은 배를 타고 바다를 도는 유람의 수준이리라 짐작했었다. 그러나 빅토르가 처음 안내한 곳은 선착장이 아닌 서귀포 시내에 위치한 작은 다이버 숍이었다. 이곳에서 일행은 각자의 몸에 맞는 슈트와 오리발, 스노클링 등의 간단한 장비를 챙겨 서귀포항에서 멀지 않은 낚싯배 선착장으로 향했다.
강렬한 태양이 넘실대는 바다 표면 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작은 낚싯배는 파도를 오르내리며 거칠게 바다를 거슬러 나아간다. 피부에 닿는 따가운 햇살은 바다 너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쓸려가고, 새롭게 펼쳐질 세계를 향한 열띤 흥분을 간간이 넘어 들어오는 새하얀 물방울의 차가운 감촉으로 진정시킨다. 가깝게 다가오고 있는 문섬을 바라보며 멍하니 넋이 나가 있는데, 갑자기 옆을 스쳐가던 유람선이 만들어낸 거대한 너울이 배 앞으로 밀어닥치면서 순간적으로 배가 높이 솟구쳐 올랐다 바닥으로 떨어진다. 위험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어 칼과 앤을 돌아보니, 오히려 일어나서 환호성까지 내지르며 배의 흔들림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제각각 한여름의 바다 정취에 흠뻑 젖어 있는 동안에도 빅토르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제주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외국인에게 우리나라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기분은 참으로 묘하다. 영어와 한국어로 말하는 빅토르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치 익숙했던 제주의 풍경까지도 전혀 생소하게 느껴져, 인도네시아의 어느 군도를 따라 유람하는 기분이 든다.
약 30분가량 나아가던 배는 문섬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돌섬인 새끼섬에 배를 갖다 댔다. 가방을 챙겨 섬 위로 뛰어내리니 너른 바위 한구석에 쌓여 있는 수십 개의 산소통이 눈에 띈다. 바다 표면에는 벌써 장비를 착용한 열댓 명의 다이버들이 차례차례 입수를 하고 있었다. “문섬 바다 밑에는 난류가 흘러 1년 내내 화려한 무늬의 어류들이 서식하고 있지요. 또한 이곳 바다 밑에는 희귀 산호들이 자리하고 있어 다이버들을 매혹시킨답니다. 새끼섬에서는 특히 연산호가 장관을 이루지요. 세계 각지에서 많은 다이버들이 이곳을 찾는데, 이곳의 산호군이 최고라는 사실에 모두들 이견이 없지요.” 빅토르의 설명이 더 이상 귓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행은 재빨리 슈트를 갈아입고 가벼운 뜀박질로 준비운동을 한 후 바위 턱에 앉아 입수 준비를 하였다. 배 위에서 보던 물빛은 검푸른 색이었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표면에서 약 50센티미터까지 투명한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파랗고, 파랗고, 파랗다. 도저히 어떠한 단어로도 이 파란 빛깔을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바다 빛깔을 에메랄드빛이라고 표현하지만 도무지 이 파랑의 정체는 세상 어느 그림으로도, 어느 사진으로도 담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물에 들어가는 것도 잊은 채 물 빛깔에 매혹되어 한동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제주도의 바다가 이토록 아름다웠다는 것을 어찌 이제야 발견했을까? 빅토르가 입수 신호를 주지 않았더라면 계속 그 상태로 남아 바위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햐아아아….”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칼의 모습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뒤이어 모두가 동시에 물로 뛰어들었다. 짧은 순간 느꼈던 센티멘털한 감상은 입수하는 순간 완전히 날아가버렸다.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바닷속의 황홀경이 온갖 희로애락의 상념을 삼켜버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물이 맑다는 동해안과 산호초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사이판의 바닷속을 들어가보았지만 이곳의 투명함과 화려함, 그리고 그 속에 살아 있는 아기자기한 풍경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얗게 빛나는 산호초 궁전들, 그 사이를 오가는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의 애교 넘치는 몸짓,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속 생명체들의 수많은 잡음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환상을 잡아보기 위해 천천히 손을 내밀자 어디선가 나타난 자그마한 열대어 한 마리가 손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며 맴돈다. 찰나, 녀석은 손가락 사이에 생긴 기포를 터뜨린 후 쏜살같이 사라지고, 녀석이 남기고 간 미세한 간지러움은 온몸에 퍼져 있는 모든 감각의 문들을 활짝 열어젖힌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거대한 오대양의 바다가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들어 오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긴장했던 육체는 바다와 하나가 되어 부드럽게 녹아든다.
물 밑 세상에서 나와 새끼섬에서 배로 5분 거리에 있는 문섬의 절벽 위에 섰다. 수평선이 맞닿은 끝자락에서부터 서서히 황혼의 기운이 밀려들며 파랗던 바다는 황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한눈에 담아낼 수 없는 광활한 대한해협의 석양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수없이 제주도를 여행했으면서도 이제야 제주도의 매력을 아주 조금 엿보았기 때문이다. 이국적인 동양의 노을빛에 물들어 행복해하는 칼과 앤을 바라보며 나 역시도 이들과 같은 이방인이었음을 깨닫는다.
화산섬의 실체에 다가서다
빅토르가 소개하는 두 번째 일정은 해안가와 계곡 트레킹이다. 아침이라 아직은 한산한 공원 길을 따라 외돌개가 보이는 절벽으로 향한다. 외돌개는 뭍과 떨어져 바다 한가운데에 외롭게 서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외돌개는 일명 장군석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서귀포 앞바다 범섬에서 원나라의 잔류 세력을 토벌할 때, 외돌개를 장대한 장수로 변장시켜 범섬에 숨어 있던 적군이 이를 보고 겁에 질려 모두 자결하게 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외돌개는 약 15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하였을 때 용암이 제주도의 모습을 변형시키면서 형성된 바위입니다. 꼭대기에 소나무가 보이시나요? 어떻게 저 척박한 바위 위에 소나무가 자랄 수 있는지, 볼 때마다 경이로울 뿐입니다.” 칼은 렌즈의 줌을 최대한 당겨 소나무를 크게 찍으려 했다. 그에게는 바위보다는 나무의 생명력이 신기한가 보다. 칼과 앤이 여느 신혼부부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지켜본 후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빅토르가 방향을 틀어 숲길로 향했다. “외돌개가 유명하지만 사실 이곳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바로 근처에 있지요. 주로 낚시꾼들이 찾는 곳이라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요.” 숲길을 지나 절벽 아래로 나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바로 아래에 바위로 둘러싸인 천연 수영장이 나타난다. 그 너머에는 거대한 절벽이 펼쳐져 있는데, 특이한 것은 절벽에 두 개의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저기 천연 수영장은 앞이 트여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기 낚시꾼들이 앉아 있는 곳 보이시죠? 얼핏 보면 천연 바위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시멘트로 마무리한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군이 한국을 점령했을 때 이곳에 병영이 있었는데, 장교들을 위한 수영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시멘트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가 말하는 일본군 병영이 있었던 곳이란 바로 두 개의 구멍을 말하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니며 가끔씩 발견하게 되는 지난날의 뼈아픈 잔재가 여행의 감흥을 반감시킨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서귀포에서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나타나는 쇠소각(쇠소깍)이다. 외진 곳에 있는 탓에 우리에게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이곳의 숨겨진 비경은 사실 몇 차례 방송에서 소개된 바 있다. 쇠소각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펼쳐진 기암괴석이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굳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용두암 역시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것이지만, 쇠소각의 기암괴석들은 하얀빛을 띠고 있으며 훨씬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다. “쇠소란 이곳에 고여 있는 호수의 이름입니다. 비가 오면 이 계곡에 물이 차서 저 기암괴석들도 물에 잠기지만, 평소에는 바다와 바로 접해 있어 물이 금방 빠져나가기 때문에 쇠소를 제외한 나머지 길목은 이처럼 기암괴석들이 독특한 조각상 모습을 드러내지요.” 정말 쇠소각의 경치는 극과 극을 이룬다. 물이 고인 쇠소는 주변에 푸른 소나무와 어우러져 풍성한 호수의 모습이지만 바로 아래에 자리한 각양각색의 바위들은 마치 화성 표면을 보는 듯한 삭막한 풍경이다. 쇠소각을 따라 바다로 걸어 내려가니 검은 모래사장이 나타난다. 검은 모래 역시 화산의 영향으로 생성된 것인데, 한때는 검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학술적 가치를 지닌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쇠소각이 제주도의 형성 과정을연구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아십니까?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 같아요. 여기 모습도 인근의 포구 공사로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입니다.”쇠소각을 빠져나와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칼이 뼈 있는 말을 던진다. “지금 까지 돌아본 제주도는 매우 독특한 특징과 색채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막상 섬 여기저기 개발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제주도만이 간직한 매력을 잘 살려내지 못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가 다음에 다시 방문할 때까지 제주도가 지금의 모습만이라도 간직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심 후에는 다시 서쪽으로 이동, 가파도와 마라도를 바라볼 수 있는 오름, 송악산으로 이동했다. “오름은 대부분 제주도 동부에 몰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오름은 거의 사유지라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지요. 더군다나 코스도 만만치 않아서 반나절로는 트레킹을 할 수가 없습니다.” 송악산의 오름은 동부의 오름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어려운 코스가 아니다. 산 중턱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턱부터 정상까지는 20분 남짓 소요되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니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이 가파도가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을 등진 체, 단체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칼과 앤는 바다의 절경보다는 그 반대 경사면 아래로 펼쳐진 옛 화산 분화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지금은 푸른 풀이 뒤덮고 있어 분화구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도, 이들은 수없이 탄성을 질러댔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보다도 더 빨리 제주도의 매력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푸른 섬의 마법에 걸린 이방인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마법을 걸어 섬에 묶어둔 마녀, 키르케는 대자연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대자연의 거대한 안식과 풍요로움이라는 마법을 물리치고 떠났지만, 한 사람은 남아 키르케의 나팔수가 되었다. 그가 바로 제주도 트레킹 전문 가이드, 빅토르다.
러시아 출신의 빅토르 랴옌체프 Victor Ryashentsev가 다른 여행 가이드들과 달리 유독 세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단지 외국인이거나 재미있는 재담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웬만한 제주도 사람들 이상으로 제주도의 역사, 문화, 사회, 지질, 식생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주도를 지독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빅토르와 제주도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교환학생으로 경기대에 다니면서부터 시작된다. 학기가 끝날 무렵 우연히 제주도를 찾은 그는 러시아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제주도의 독특한 자연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러시아로 돌아간 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경제에 대해 공부를 마치고 1997년 연세대 어학당 강사로 다시 한국을 찾는다. 이 시기, 친구의 권유로 배우게 된 스킨스쿠버다이빙은 그가 제주도의 매력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이빙을 통해 제주도가 간직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조금씩 제주도의 모든 것에 관심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말, 모국의 대학에서 연구원 자리를 제의받은 빅토르는 인생에 있어 최대의 갈림길에 놓인다. 결국 그의 선택은 제주도였다.
연구원 자리를 포기하고 제주도로 완전히 이사를 온 빅토르는 본격적으로 제주도와 함께할 인생을 설계한다. 이 무렵 러시아에 남아있던 그의 부인 나타샤 나자렌코 Natasha Nazarenko도 러시아를 떠나 그의 곁으로 날아온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여행사 ‘제주에코(www.jejueco.com)’를 오픈한 2003년 말까지, 제주도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뒤적이며 공부하던 2년간은 이들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 이때 빅토르에게 신념을 밀고 나가게 해준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는데, 결혼 후 9년 동안 생기지 않았던 아이, 마리아 Maria가 태어난 것이다. 제주도가 선사해 준 이 사랑스러운 선물은 빅토르와 나타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 계기가 되었다. “아직은 출발 선상에 있지만, 저는 이곳에서 저와 제 가족의 미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도가 우리 가족에게 보여준 호의의 손길에 보답하는 방법은 제가 지금껏 보고, 듣고, 느끼며, 찾아낸 제주도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